‘이런 직업도 있어?’ 색다른 길을 걷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아보려한다.
냄새 디자이너, 기억을 디자인하다 – 향수 조향사(調香師)
어떤 냄새는 단숨에 기억을 끌어올린다.
어린 시절 외할머니의 파우더 향, 첫사랑이 쓰던 향수, 비 오는 날 도서관의 책 냄새.
그 향 뒤에는 사람의 감각을 설계하는 전문가, ‘조향사’가 있다.
조향사는 단순히 ‘향수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냄새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직업이다.
특정한 브랜드나 공간, 감정을 ‘향’이라는 비언어적 언어로 설계하고 재현한다.
하나의 향을 만들기 위해 수백 가지 향료를 혼합하고, 그 조합을 끊임없이 조율하는 작업은 예술에 가깝다.
향수를 “눈에 보이지 않는 마케팅”이라고 표현한다.
브랜드 매장에서 나는 향은 대부분 조향사가 맞춘 것. 소비자가 그 향을 맡고 기분이 좋아지면, 자연스럽게 제품에 대한 인상도 좋아진다.
조향사의 세계는 섬세함과 상상력의 싸움이다.
‘봄날의 설렘’, ‘바다 안개’, ‘이별 후의 그리움’ 같은 추상적 개념을 후각 언어로 번역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조향사는 ‘향료 뽑기 → 비율 조정 → 숙성 → 시향 테스트’를 수십 번 반복하며, 한 병의 향수에 수개월을 투자하기도 한다.
이 직업은 감각적이지만 동시에 전문성이 높은 분야이기도 하다.
조향학과, 향료화학, 후각 심리학까지 다양한 학문을 바탕으로 하며,
국내외 조향사 교육 기관에서 정규 과정을 이수해야 진출이 가능하다.
또한 최근엔 ‘퍼스널 향수’, ‘공간 조향’, ‘반려동물 무향 제품’ 등 맞춤형 니치 향수 시장이 성장하며 1인 조향사 브랜드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냄새를 기억으로, 감정을 향기로 바꾸는 이 직업은 후각을 통해 세계를 디자인하는 예술가라고 불릴 만하다.
장난감을 치료하는 어른 – 장난감 수리공
부서진 로봇, 다리 하나가 떨어진 인형, 헝클어진 곰인형의 털…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장난감을 쓰레기통에 버린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 장난감을 ‘환자’처럼 정성스럽게 고친다.
그들이 바로 장난감 수리공이다.
서울 홍대 근처에 위치한 ‘장난감 병원’을 운영하는 김준서(가명) 씨는 원래 전자공학도였다.
하지만 어린 시절 아끼던 장난감을 버려야 했던 기억이 늘 마음에 남았고,
우연히 중고 장난감을 고치면서 이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장난감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에요.
어떤 아이에게는 친구고, 어떤 어른에겐 추억이죠.”
수리 공정은 의외로 복잡하다.
작동 오류를 잡기 위해 회로를 분해하고, 오래된 플라스틱 부품은 직접 3D프린터로 재조립한다.
오염된 인형은 손세탁과 드라이클리닝까지 병행한다.
심지어 눈이나 입이 사라진 인형에게는 새로운 얼굴을 만들어주는 복원 작업도 이뤄진다.
의뢰인은 다양하다.
어린이뿐 아니라, 40대 이상 어른들도 많다.
"이 인형은 어릴 때 외국에서 돌아가신 아버지가 사준 거예요. 꼭 고쳐주세요."
이런 메시지를 받을 때면, 그는 단순한 수리공이 아니라 감정을 복원하는 사람이 된다.
장난감 수리공은 현재 전국적으로도 몇 안 되는 드문 직업군이다.
하지만 친환경 소비, 물건의 ‘수선 문화’가 떠오르면서
이 직업은 재활용을 넘어 ‘재가치화’의 전문가로 재조명받고 있다.
장난감 수리공은 단순히 고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감정, 기억, 관계를 함께 복원하는 정서적 복원가다.
기계와 감성이 만나는 지점에서, 이 직업은 조용히 빛나고 있다.
게임 속 언어를 현실로 – 게임 번역가의 숨은 고수들
"Press X to pay respect."
이 문장이 "X 버튼을 눌러 조의를 표하세요."로 번역되기까지,
게이머들이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숨은 조력자가 있다.
그들이 바로 게임 번역가다.
게임 번역은 일반적인 문서 번역과 다르다.
게임 내 대사는 짧고 임팩트 있어야 하며, 문화적 맥락을 고려한 의역이 중요하다.
게다가 캐릭터 성격, 배경 설정, 유머 코드, 게임 시스템까지 이해해야 한다.
그렇기에 게임 번역가는 단순한 번역가가 아닌, 게임 세계관 해석자에 가깝다.
정다혜(가명) 씨는 유명 RPG 게임의 한글화를 담당한 프리랜서 번역가다.
그녀는 "단순히 영어를 한국어로 바꾸는 게 아니라,
이 게임을 가장 먼저 즐기는 플레이어가 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게임 번역가는 텍스트뿐 아니라 UI 버튼, 튜토리얼, 퀘스트 로그, 아이템 설명 등
수많은 요소를 직관적이고 자연스럽게 번역해야 한다.
“‘공격력 +10’ 같은 수치는 쉬워 보이지만, 유저가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말맛을 맞추는 게 핵심이에요.”
이 직업의 가장 큰 보람은,
자신이 번역한 대사를 보고 플레이어들이 감동하거나 웃을 때다.
"댓글에 ‘이 대사 너무 찰지다’는 반응을 보면 정말 보람 있어요."
게임 산업이 계속 성장하면서,
게임 번역가는 단순한 하청 노동이 아닌 콘텐츠 품질을 결정하는 핵심 역할로 주목받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어, 중국어, 프랑스어 게임까지 다국어 로컬라이징 전문가에 대한 수요도 증가 중이다.
게이머의 감정을 움직이는 문장,
그 한 줄의 감정을 책임지는 이색 직업.
게임 번역가는 보이지 않는 연출자이자, 세계관의 전달자다.